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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완성은 <제목>
by. Lee
바쁠수록 제목은 중요해지는 법이다. 10글자의 제목에 온갖 정보를 키워드 형태로 넣어야 하는 세상이다. 이제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내용을 추측한다. 물론 제목이 내용을 그대로 담지 않아도 괜찮다. 그 제목을 클릭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결국 제목은 영화의 첫 인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포스터의 그림과 함께 직관적으로 눈에 띄는 제목. 어떤 사람들은 그 짧은 한 문장에 이끌려 2시간을 기꺼이 내주기도 한다. 원작의 제목이 이상하게 번역되면 연일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오늘은 창작물의 제목을 탐구해보자.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제목: <살인자ㅇ난감>, <몸 값>
중의적인 제목은 역시 화제를 불러오기에 좋은 선택이다. 구글에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자연스럽게 '제목 의미'가 연관검색어로 뜨기 때문이다. 이런 궁금증을 바탕으로 제목의 다양한 뜻을 추측하는 재미가 포인트다. <살인자ㅇ난감>이 <살인자 난감>이었다면 아무래도 덜 기대되지 않았을까? 포스터 가운데 빨간 동그라미 배치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다소 당황스럽게 연쇄 살인을 저지르게 된 대학생의 난감함(살인자의 난감),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살인 장난감)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제목을 잘 지었다.
<몸값>도 비슷하지만 이중적인 의미를 전복시킨 사례다. 예고편이나 극 초반에는 매춘을 의미하는 것 처럼 보이는 '몸값'.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몸값'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소 중의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끈 뒤, 예상치 못한 서사가 전개되었을 때의 신선함을 더하는 방식이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여기까지만 설명하겠다.
♣️비유를 담은 제목 - <하우스 오브 카드>
지금의 넷플릭스를 만든 작품, 하우스 오브 카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카드로 쌓은 집’을 뜻하는 말로, 흔히 위태로운 상황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미국 하원을 House라고 부르는 것, Card가 도박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완성된다. 미국 정치계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드러내기에 적절한 제목이다. 이런 제목은 콘텐츠의 주제를 잘 압축해서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제목만 봐도 우리는 하우스 오브 카드가 '멋지고 세련된 미국 정치계의 로망'이 아니라 '정신없고 무너질 것 같은 정치계의 혼란'을 보여주겠다는 짐작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음절 제목 - <업>, <런>
단음절 제목은 외우기 쉬우면서도, 흔하지 않아 개성을 나타내기에 좋다. 풍선을 달고 날아오르는 집 이야기에 ‘위쪽’을 뜻하는 <업>이라는 제목은 뇌리에 꽂히는 느낌이 든다.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에, 어린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매력적인 네이밍이다. '풍선을 타고 나는 하늘 집'이라는 제목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쩐지 업이라는 한 음절이 주는 리듬감이 있으니까.
스릴러 영화로 분류되는 <런>도 한 글자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런>은 범인을 찾는데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범인으로부터 달아나는데 영화의 러닝타임을 사용하는 영화다. 범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 탈출에 어려움을 겪는 스릴이 연출의 핵심인 것이다. 이를 생각해보면 '런'이라는 제목은 한 단어로 영화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장 형태의 제목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전혀 반대로, 아예 문장 형태의 긴 제목이 이목을 끌 수도 있다. 다만 이때는 제목이 '구구절절한 설명'이 되면 곤란하다. 설교하는 문장은 어디든 인기가 없기 마련이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문장이 역시 최고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제목을 통해 주의를 집중시키면서도,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일본 원작의 제목(親の顔が見た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실제로 일본에서는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문장이라고 알려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직설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좋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한국어 제목을 아주 잘 선정한 케이스다. 원제를 영어로 직역하면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인데, 아무래도 한국어판 제목이 조금 더 명확하게 와닿는다.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로 주제를 전달하며, 사랑을 할 때 만큼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공감과 함께 그려낸다.
🔫오마주나 패러디를 활용한 제목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잔고: 분노의 적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패러디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품의 제목을 가져다쓰는건 영화, 책, 노래를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오죽하면 위키백과에 '제목이 같은 작품'이라는 페이지가 생성되어있겠는가. 쿠엔틴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1984년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예 영화를 웃기게 패러디한 작품도 있다. 겉만 액션영화고 실상은 코미디(?)인 <잔고: 분노의 적자>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연상짓게 한다. 익숙한 제목 구조와 배열은 시청자에게 친숙함을 불러옴과 동시에, 콘텐츠의 주제나 장르까지 우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